들어가며
한국 근대 화단의 대표적인 작가인 김환기는 문인과 화가의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를 살았고, 그 교류의 중심에 있었던 예술인이다. 김환기가 활동을 시작한 1930년대는 문학과 미술의 장르 간 경계 넘기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였고, 그는 이 시기와 더불어 1950년대에서 1974년 타계하기까지 국제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문학과 미술의 결합 작업을 추구하였다. 국내에서도 전시를 선보인 김환기의 작품 '우주'는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작품설명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1913-1974). 말년의 그는 수많은 점이 화면을 빼곡하게 채운 '전면점화’의 세계를 완성했다. 그가 1971년 제작한 '우주 05-IV-71 #200'은 어떤 경지에 이른 김환기 추상회화의 정수로 통한다.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두 폭으로 구성되어 더욱 특별하다. 수직으로 긴 양 화면의 원 이미지가 조화롭게 대칭을 이룬 모습으로, 전체 작품은 254×254㎝ 크기의 정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작품을 보면, 벌집 구멍처럼 작은 네모꼴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고, 그 사이를 얇은 서예 붓으로 찍은 무수한 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2020년 5월 21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갤러리 현대 50주년 특별전'에서 전시된 김환기 화백의 '우주'는 큰 울림과 감동을 주는 좋은 경험이었다.

점과 선, 색, 면이 한 화면에서 유기적으로 만나 거대한 ‘우주’를 이룬다. 화면 상단의 점들이 원을 그리며 아래로 진동하듯 확장되어, 그 앞에 선 관객은 무한한 공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을 채운 ‘점’하나하나는 우주를 구성하는 빛나는 별이자, 작품의 제목처럼 우주 그 자체를 상징한다. '우주 05-IV-71 #200'은 1971년 9월 뉴욕 포인덱스터갤러리(Poindexter Gallery)에서 열린 개인전에도 출품됐으며, 포스터에 작품의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전시를 본 한 평론가는 김환기의 ‘우주를 표현하는 놀라운 어휘’를 호평했다.
김환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의 작품을 통해서 영혼성을 창조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 계속적이며 반복적인 패턴은 크기의 다양성이나 형태나 예기치 않은 색채들로서 흐트러짐 없이 우리의 눈을 위로해준다. 어느 때보다도 색채의 광범한 범위 속으로 깊이 들어간 그는 별빛처럼, 혹은 밤의 도시의 불빛처럼 점과 사각형의 단위의 몇 가지 색깔로서 하나의 어휘를 구사하고 있는데… (중략) 환기의 작품들은 우주를 표현하는 놀라운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75년 10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제13회 상파울루비엔날레의 특별전에도 출품되었다.
인간 김환기의 삶과 화풍의 변화
김환기는 전남 신안군에 자리한 작은 섬 기좌도(현재 안좌도)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고향을 떠나 서울과 동경에서 유학시절을 보낸 후 파리, 뉴욕에서 주로 거주했다. 작품 활동의 전성기를 포함해 그의 활동기반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서구에 두고 있었으나 그는 바다와 섬, 구름, 산이 있는 고향 산천을 작품에 반영하며 한국적인 추상회화를 구축한 화가였다.
일본 동경시절
김환기는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를 마친 후, 1936년까지 일본대학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당시 일본 화단은 야수파와 입체파가 성행했는데 김환기는 입체파와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수용하여 대상 해체와 본질 추구에 작업의 목적을 두었다. 그는 재학시절부터 아방가르드 조직에 참여하였으며 자유미술협회, 백만회, 이과회에 순수 조형성의 작품들을 출품하였다. 김환기의 예술세계는 초기인 동경시대와 중기인 서울·파리시대, 그리고 후기인 뉴욕시대로 나누어진다.
1937년 동경의 천성(天城)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며, 이 무렵 작품으로는 당시 일본 화단에서 진취적 성향을 보인 이과회에서 입선했던 '종달새 노래할 때'를 비롯해 평면적 색채와 형태 구성을 통해 음악적인 요소를 가미한 듯 곡선과 직선, 네모와 원형으로 그린 '론도'와 단순화된 기하학적 색면 형태로 제작된 '창'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다 할지라도 귀향의 본능이 잠재돼 있기 마련이다.
1931년부터 6년 동안 동경 유학시기 김환기는 독자성을 구축하기 보다는 서구 모더니즘 미술을 수용하여 재해석한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이 무렵 그는 고향에 올 때마다 안좌도의 자연을 화폭에 담았는데 이는 일찍이 고향을 떠난 연유로 섬과 바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작업이었다. 초기인 동경시대는 입체파, 구성파의 영향을 거쳐 추상미술에 도달하였으며 해방 후는 추상적 바탕에 자연적 이미지를 굴절시킨 독특한 화풍을 펼쳐 보였다. 특히 이시기 김환기가 많이 다룬 소재는 달, 산, 항아리, 학, 매화 등 고유한 정서를 담은 것이었다.
파리시기
파리 시기에 제작된 '새와 항아리', '영원한 계절'은 수평과 수직을 주축으로 화면을 단순화시켰으나 소재를 그린 형태와 선은 주로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했다. '새와 항아리'는 화면을 3등분으로 나누어 놓은 독특한 구성이 특징이다. 간결하게 처리된 달과 항아리의 선은 달의 하단 부분과 항아리의 상단을 겹치게 했는데, 이는 두 대상이 가진 동질성을 강조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창공을 날다 달빛 속으로 들어선 커다란 학은 날개를 다소곳이 아래로 접어 내려 고요한 밤의 풍경을 흩뜨리지 않고 있다. 화면 하단에는 겹쳐진 몇 개의 검정 선으로 처리된 매화가 고즈넉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다.
'영원의 노래'는 실내의 백자와 창문을 통해 보이는 산과 새를 그렸다. 선택된 사물들은 형태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게 구성되어 있다. 파리 시절 김환기의 작품에는 유난히 자연의 이미지가 부각되어 있는데 고국의 산과 섬의 형상을 추상으로 나타낸 그림이 많다. 특히 항아리를 선택함은 우리 겨레의 슬기와 정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정적이며 심성이 투영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이들 작품은 먼 이국에서 고국을 그리는 자신의 심경을 대신하고 있다. 그는 향수를 시정으로 형상화 하였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자 했다. 이 때 역시 화면의 주조색은 청색과 보라색으로 소재, 구도, 형상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뉴욕시기
뉴욕으로 이주했던 1960년대 초반부터 말년까지 작품은 반복적인 점을 사용한 전면점화를 시도한 완전 추상을 이룩했다. 그는 색점들을 찍어서 화면 전체를 메우거나 화면을 두 면으로 분할하기도 하고 수평선, 수직선, 사각의 테두리 등 바탕에 다양한 변화를 주면서 균일성을 이루고자 했다. 그의 작품들은 추상화로 간주되지만 자연 상태를 합일시킨 작업으로 내면에는 구체적 형상을 품고 있다 할 것이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추상회화 화가 김환기의 작품은 1970년대 뉴욕시기를 맞이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에서 얘기될 수 있지만, 해방 후 한국전쟁기였던 1950년대 초반부터 보여준 그의 작품들은 추상과는 먼 형상적인 ‘항아리’의 표현에서 그의 추상의 뿌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대동아 전쟁의 불안한 시국과 맞물려 한국에서 더 이상의 추상 회화는 볼 수 없었지만, 그 후 한국전쟁기에 그의 작품은 백자와 같은 한국 고전의 구체적 형상을 초현실주의적인 시점에서 아득히 먼 시간의 이상향 속에 등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티프는 그가 1930년대 일본 전위미술 화단에서 추상예술의 영향과 관련되며, 그 정신적 동방의 고전으로서의 사색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그의 추상예술 작품이 지속되지 못하고 1940년을 전후로 양식의 변화를 보여준 이유는 아마도 이때 일본 추상예술 화단이라 할 수 있는 자유미술가협회가 4회를 맞이하면서, 이 협회 내에서 이미 수수한 추상주의를 표방하는 작가들의 세력이 약해졌던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1963년 뉴욕에 정착하면서 김환기의 예술은 또 다른 변신을 보인다. 구체적인 자연대상은 지워지고 선, 점, 면 들로 구성되는 순수한 추상에로의 변모이다. 방법상에서도 지금까지의 두터운 마티에르(질감) 위주에서 벗어나 안으로 스미는 듯한 엷고 투명한 안료로 뒤덮이는 은은한 여운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최고 낙찰가의 우주 작품
김환기 화백의 작품 ‘우주’(Universe 5-IV-71 #200)는 2019년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한국 미술 사상 최고가인 132억에 낙찰된것으로도 유명하죠. 김환기(1913~1974)의 1971년 작품인 ‘우주’는 지금까지 그의 작품 중 사이즈가 가장 크고(254×254㎝) 좌·우로 나뉜 2개의 그림을 하나로 합친 희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크리스티홍콩 경매당시 10여분의 경합 끝에 거액으로 낙찰된 것으로 소장자는 외국인, 재미동포 등의 소문으로만 무성했다가 김웅기 회장으로 밝혀졌었죠.
마무리
1913년 전남 신안에서 출생한 김환기는 일찍이 동경에 유학하여(일본대학 예술학부) 1930년대 후반 일본화단의 전위적 단체인 자유미술가협회전 창립에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인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1947년에는 유영국, 이규상과 더불어 신사실파를 결성하여 모더니즘의 계보를 형성하는 한편 서울·홍익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펼쳐 보였다. 1956년에는 프랑스로 진출하여 약 3년간 체류했으며 1959년 귀국 후는 홍익미대 학장, 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는 등 미술계 중심에서 활동했다.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그해 미국 뉴욕에 정착한 이후 1974년 작고하기까지 뉴욕 화단에서 활동하였다. 김환기의 작품 변화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사실적인 표현에서 시작하여 완전 추상화로 점차 나아갔다. 이러한 변형을 거쳐 표현하는 방식은 색다르고 다양하게 표출되었으나 조형의식의 근원은 한국미의 실현이라고 할수 있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이고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고 작가는 말한바 있다. 그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그가 그린 정물은 한국 고유의 기물, 풍경은 한국의 자연이다. 화면에서 푸른 배경에 산과 달, 새의 이미지는 일찍 떠나 온 고향인 안좌도 섬과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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