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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공부] 공사 실명제를 실행한 최초의 성 수원화성, 공사실명제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

by Sugarone 2025.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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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수원화성은 1794년 정조대왕의 명으로 착공되어 1796년 완공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공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착공 준비기인 1794년 1월 ~ 1794년 2월, 본격적인 공사기간인 1794년 2월 ~ 1796년 9월, 완공 이후인 1796년 9월 이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건물 완성 순서에는 다양한 요인과 이야기가 전해져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창건공사에 직책과 실명제가 도입되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수원화성 축성 공사가 이루어진 1794년 1월에 준비를 시작하여, 1794년 2월 25일 착공, 그리고 1796년 9월 10일 최종 완공까지에 얽힌 이야기, 이 모든 과정은 정조의 개혁 의지와 과학적 기술력이 결합된 결과들을 살펴볼게요.

 

수원화성 창건공사 순서, 건물완성 순서

화성창건공사는 정조18년(1794년) 1월 7일 묘시에 돌뜨는 작업을 시작하여, 정조20년(1796년) 9월 10일 화성공사전체가 완료되었다. 감동당상(監董堂上) 조심태와 도청(都聽)이유경은 정조 17년(1793년) 12월 11일 성벽 쌓을 터전을 사전에 조사하였다. 축성당시 성곽의 기초를 돋구기 위한 토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수원천과 남지, 북지의 연못을 파내는 작업을 먼저 시작하였다. 2월 28일 장안문, 팔달문, 화홍문, 남수문터를 닦기 시작하여 4월 16일부터는 팔달문의 동서측의 성벽을 쌓기 시작하였고, 8월 2일에는 팔달문, 홍예문, 조성이 완료되었다. 9월 5일 장안문 문루가 완성되었으며, 9월 15일에는 팔달문의 문루가 완성되었다.

 

9월 28일에는 낙남헌이 준공되었으며, 다음날이 29일에는 서장대가 완성되었다. 10월 8일에는 봉수당과 행궁의 여러 건물이 준공되었다. 그리고 10월 19일에는 동북각루(방화수류정)가 완성되었다. 1794년 11월 1일부터 이듬해인 1795년 5월 6일까지는 잠시 공사를 중단하였는데,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서는 겨울의 공사중지에 대해 품삯 지불이 끝날 때 까지라고 적고 있다. 이 기록을 미루어 보면 겨울의 공사중지는 날씨 탓 만은 아니고 장인이나 인부들에게 줄 노임의 준비가 원활하지 않아 그 준비를 갖출 때까지 잠시 중단한 경우로 보인다.

 

1795년 5월 13일에는 화홍문의 문루가 완성되었고, 8월 25일에는 동장대가 준공되었다. 10월 17일에는 창룡문의 문루가 완성되었다. 정조 20년(1796년) 1월 8일 화서문의 문루가 완성되었고, 3월 10일에는 서북공심돈이 완공되었다. 6월 17일에는 봉돈이 완료되었고, 7월 20, 25일에는 각 각 화양루와 동남각루가 준공되었다. 그리고 8월 18일 서포루를 완공함으로서 성벽축성이 완료되었고, 1796년 9월 10일에는 화성공사 전체가 드디어 완료되었다.

 

10월 16일에는 정조의 참석 하에 낙성연이 거행됨으로서 당초 10년 계획의 화성축성은 2년 9개월만의 짧은 기간동안에 완성되었다. 화성창건의 주역인 정조대왕을 비롯하여 화성축성을 총 지휘한 채제공, 공사를 감독한 조심태 이외에도 오늘의 입지를 수원부 이전이 본격화되는 1794년보다 약 120여년이나 앞서서 언급한바 있는 반계 유형원, 성곽설계의 총정리와 거중기발명 제작 등으로 실학정신을 충실히 실현하고자 하였던 다산 정약용 등의 공과도 높이 평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수원화성 창건공사 직책

화성축성공사 종사자는 크게 나누어 공사를 감독한 관리 계층과 직접 공역에 종사한 노동계층으로 분류할수 있다. 관리계층은 주로 조정의 전·현직 관리들이었다. 공사관리 책임을 맡은 관리 가운데 중요한 사람을 열거하면 총리대신 영중추 부사 채제공(蔡濟恭), 감동당상 행부사직 조심태(趙心泰), 도청 행부호군 이유경(李儒敬), 총리대신은 공사전체를 총괄하는 최고책임자로서 주로 서울에 머물면서 왕에게 공사 진척상황을 알리고 또 다른 각부 대신들에게 공사에 필요한 협조를 구하는 일을 맡았다. 이 일을 이미 좌·우의정을 역임한 채제공에게 맡김으로서 화성축성이 당시에 얼마나 비중을 크게 둔 중요한 공사였는지를 알수있다.

건축실명제도를 나타낸 명판
건축실명제도를 나타낸 명판

 

감동당상(監董堂上)은 현장과 서울을 오가며 실제 공사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는 모든 실무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 수원의 유수를 맡았던 조심태가 담당했다. 도청(道廳)은 주로 공사현장에 상주하면서 실제로 공사가 진행되는 모든 일을 일일이 점검하고 추진하는 실무책임 역할을 맡았다. 기타 자재와 출납을 관리하는 책응도청(策應道廳), 업무의 감독과 관리를 담당하는 별감동(別監董)과 별간역(別看役)이 담당하였다. 그리고 기술자들인 장인들의 체계를 다음과 같이 직책일람표에서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명판은 팔달문, 화서문, 장안문에도 남아있다.

 

마치며

수원화성 축성 시 실시된 실명제(實名制)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제도로 정조(正祖)의 강력한 개혁 의지와 과학적인 행정 시스템이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실명제는 공사에 참여한 모든 인부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제도이며 단순히 누가 공사에 참여했는지를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인부가 맡은 공사 구역과 작업량, 그리고 그에 대한 임금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기록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수원화성은 당초 예상했던 기간보다 훨씬 짧은 2년 6개월 만에 완공되었습니다. 이는 실명제를 통해 공사 과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으로 이 제도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백성의 노고를 존중하고, 투명한 행정을 실천하려 했던 정조의 개혁 철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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