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화성행궁
사적 제478호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 되었다.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戰亂), 휴양, 능원(陵園)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평상시에는 화성부 유수(留守)가 집무하는 내아(內衙)로도 활용하였다. 화성행궁은 576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 1980년대 말, 뜻있는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마침내 482칸으로 1단계 복원이 완료되어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한 화성행궁은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르기도 했으며, 1796년에 전체 600여 칸 규모로 완공되었습니다.일제강점기에는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며 대부분 파괴되었다가, 1996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해 2002년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쳤습니다.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 행궁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습니다.
신풍루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입니다. 1789년에 수원읍의 관청 건물을 옮기면서 그 정문으로 지었는데, 처음에는 진남루라 부르다가 1795년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면서 이름을 신풍루로 바꿨습니다. 신풍루는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인 풍패에서 따온 이름으로 제왕의 고향 풍패지향으로서 화성을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정조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건물은 2층의 누각 구조로 아래층은 출입문으로 쓰고, 위층에는 큰 북을 두어 군사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신호를 보내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문루 좌우에는 행랑을 두었고, 양쪽 끝에는 군영을 배치해서 경호 체제를 갖췄습니다.

남군영
남군영은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주둔하는 건물입니다.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남군영과 북군영 건물을 짓고 약 100명의 군사가 교대로 행궁을 지켰습니다. 장용영 군사는 왕이 화성에 내려올 때는 물론 평소에도 화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는데, 봄, 가을로 두 번 시험을 치러서 수석을 차지한 군사에게는 곧바로 관직을 높여주는 등 특별한 혜택을 주었습니다.
유여택
유여택은 수원읍치를 옮긴 이듬해인 1790년에 지은 건물로, 화성 축성을 시작하던 1794년 가을에 증축되었습니다. 처음 건물은 은약헌으로 부르다가 증축 후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유여택이란 <시경>에서 주나라의 기산을 가리켜 ‘하늘이 산을 만들고 주시어 거처하게 하였다’라는 고사를 인용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정조는 유여택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무사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한 뒤에는 화령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현륭원 재실과 창덕궁 주합루에 있던 정조의 초상화를 모시는 공간으로도 사용 되었습니다. 처음 지은 은약헌의 북쪽 1칸은 공신루라는 누마루였는데 증축하면서 실내에 온돌을 놓고 창호를 달았는데, 현재 창호는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봉수당
봉수당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로 고을 수령이 나랏일을 살피는 동헌으로 지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장남헌이었으나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계기로 봉수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궁궐에서는 대비나 상왕이 머무는 건물에 “목숨 수(壽)”자나 “길 장(長)” 자를 붙이는 전통이 있어, 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며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건물은 정면 7칸으로 일반 동헌과 마찬가지로 대청과 방을 둔 구조이나, 마당 한가운데에는 왕이 지나는 길인 어로를 두었고 건물 앞에는 넓은 기단인 월대를 갖추었습니다. 어로와 월대는 일반 동헌에는 없고 임금이 머무는 공간에만 설치하는 시설입니다.

낙남헌
낙남헌은 화성행궁에서 공식 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하는 건물입니다.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부하들 덕분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낙양의 남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본떠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정조는 1795년 을묘원행 당시 낙남헌에서 수원의 백성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무과 시험을 치르고 상을 내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습니다. 낙남헌 건물은 벽이 없는 개방된 구조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데, 연회를 베푸는 건물답게 건물 앞에는 월대를 두어 격식을 높였습니다. 월대로 오르는 계단 양 옆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낙남헌은 궁궐 전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건물로 원형이 잘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원군청으로 사용되었고, 신풍초등학교 교무실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화령전
화령전은 정조의 어진, 즉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입니다. 정전인 운한각을 중심으로 이안청, 복도각, 재실, 전사청과 향대청 등을 갖추고 내삼문과 외삼문까지 구비하였습니다. 화령전은 당대 최고 기술자들이 참여하여 약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되었습니다. 정조가 승하하자 화성행궁 옆에 화령전을 완성하고 현륭원 재실과 창덕궁 주합루에 모셔져 있던 정조 어진을 옮겨와서 봉안했습니다. 화령전의 정전인 운한각과 이안청 · 복도각은 창건 당시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 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정전(운한각)
운한각은 정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정전입니다. 중앙에는 정조 어진을 모신 합자를 두고, 좌우에 있는 익실에는 정조가 편찬한 책과 제사에 쓰는 물품을 보관했습니다. 보통 어진을 모시는 공간은 화려하게 치장하지만 검소한 생활을 강조한 정조의 뜻을 받들어 소박하게 만들고, 학문을 좋아하던 왕을 기리기 위해 익실에 서책을 봉안했습니다. 순조는 1804년에 처음 화령전에 와서 작헌례를 올렸는데, 이때 건물 이름을 운한각이라 짓고 현판의 글씨를 직접 썼습니다. 현재 운한각에 봉안되어 있는 어진은 2004년에 다시 그린 표준영정으로 원래 모셔져 있던 정조 어진은 1908년에 서울로 옮겨졌으나, 1954년 부산 피난처에서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미로한정
미로한정은 화성행궁 후원에 세운 소박한 정자로 수원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이전한 이후에 지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육면정이었으나 1795년에 미로한정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는 ‘늙기 전에 한가로움을 얻어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다’라는 시구를 인용한 것으로 보이며,아들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에 내려와 한가하게 노년을 즐기고자 했던 정조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화성 축성을 막 시작한 1794년 정월, 정조는 미로한정에 올라가 허허벌판이던 수원부에 1천여 집이 들어서 번성한 모습을 바라보며 관리들을 칭찬했다고 합니다. 정조 재위 기간 동안에 활약한 화가 김홍도는 미로한정 주변에 가을 국화가 가득한 모습을 ‘한정품국’이라는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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