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들의 와인 14 세기
부르고뉴 와인은 교황의 아비뇽 유수 기간 동안 정치, 시민 사회를 공략하기 위해 로마의 셀러를 떠났습니다. 사실상, 플랑드르 지방의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은 공작들의 선호도를 모방하였습니다. 이 나라들과 함께 와인 교역이 활성화되었는데 1395년 8월 6일 부르고뉴지방의 고품질 포도주 생산을 요구하는 필립르아르디공작의 명령이 선포되었습니다. 공작들은 이때부터 포도주의 역사에서 최초로 효과적인 포도재배와 와인 양조를 위한 정책을 수립했습니다.
«Terroir»의 연구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못하였고 포도 품종의 선택이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1349 년경, 새로운 포도 품종인 갸메가 발견되자 불만족이 가중되었는데 지나치게 생산성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품종은 널리 알려진 부르고뉴 와인의 품질에 대한 평판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부르고뉴 공 필립르아르디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고 1395년에 자신의 지역에서 갸메 종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담은 칙령에 서명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같은 종류의 내용에 관여하는 여러 개의 칙령을 발효해야 했는데 그것은 그의 명령이 즉각적인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칙령은 고품질의 포도원이 가져야 할 생태학적 원칙을 담았는데 이에는 소비자의 건강에 대한 고려가 담겨있었습니다. 부르고뉴의 레드 와인을 오로지 피노누아르로 제한하려는 이 의지는 그 미래와 정체성에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시토 수도회가 재배한 중 최고의 품종인 샤도네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실상, 부르고뉴 공작들이 시토 수도회에 하사한 최초의 포도원들 중에서 특히 미사용으로 우선적으로 고려된 것은 화이트 와인을 생산했던 포도원들입니다. 이와 같은 시토 수도회의 최초의 포도원은 뫼르소에 있던 끌로드바르 였습니다. 또한 부르고뉴 북부 퐁티니 수도사들의 최초의 포도원은 샤블리에 위치해 있었고 당시에 보누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었던 샤도네이를 이미 경작하였습니다.
1416 년 상스에서 마꽁에 이르는 부르고뉴 포도주의 생산 지역 경계를 확정지은 샤를 6세의 칙령
15 세기
최후의 발루아 가문의 공작인 샤를르 떼메레르가 1477년 패배하자 부르고뉴 와인은 비로소 모든 귀족들의 궁정에서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당시에 사부아 지방부터 플랑드르에 이르기까지 영토가 확장되었던 부르고뉴는 자신의 모든 영토에서 뿐만 아니라 교황청을 비롯한 수많은 다른 유럽 지역의 궁정에까지 부르고뉴 와인을 퍼뜨릴 수 있었습니다. 1477년 1월, 샤를르떼메네르의 죽음과 함께 부르고뉴 와인은 자신의 수호자이자 외교관을 잃어버렸고 이 때 부터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그로 인해 품질이 좀 떨어지는 와인을 생산하는 시기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렇게되어 한동안 시토회 수도사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발전시킨 인상적인 와인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18 세기의 부르고뉴(Bourgogne) 와인
부르고뉴 와인은 부르고뉴 수도사들과 공작들의 주도 아래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최상의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들을 규정짓고 포도 나무를 정비했으며 품질 관리를 단계적으로 실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행과 노력으로 수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르고뉴 와인의 명성은 점차 높아져 갔으며 사람들은 계속하여 부르고뉴만의 « Terroir »를 만들어 갈수있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전까지의 부르고뉴 와인
부르고뉴 공국의 몰락 이후, 프랑스의 왕은 이 지역을 정치적으로는 물론 상업적으로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발루아 가문의 공작들이 했던 것처럼 와인을 보호하지 않았고 그 결과 상황이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잘 알았던 수도승들이 했던것과 달리, 원하는사람은 누구나 아무 지역에나 지리적 고려 없이 밀보다 더 수익성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1660년 부르고뉴 의회는 이에 격분하여 포도나무를 밀밭으로 조성되었던 토지와 평지에 심지 못하도록 하고 오직 경사지에만 포도 나무를경작할 수 있도록 허가 하였습니다.
파공의 처방 부르고뉴 와인, 베르사이유를 점령하다
1693년 루이 14세의 왕실 의사로 임명된 파공은 그의 환자에게 “부르고뉴 의오래된와인”라고 기술 된처방전을 써주며 이를 식이요법에 알맞은 와인으로써 권하였습니다. 이는 부르고뉴 와인이게 매우 유익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곧 궁정의 모든 사람들이그때까지 유일한 라이벌이었던 샴페인 대신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마꽁 지방의 포도 재배자 끌로드브로스는 직접 자신이 생산한 포도주통을 들고 베르사이유로 왔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직판이었던 것입니다. 18 세기는 과학과 이성에게 바쳐진 시기였고 사람들은 부르고뉴 와인의 우수성을 연구를 통해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토양, 지층, 기후적 요인, 포도 품종, 인간이 끼치는 영향 등과 와인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1720 년에 이르러, 부르고뉴 와인의 공식적인 시음가들인 중개인과 포도주 감정가들의 동업 조합은 점차 독자적인 개별 와인상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 기시작했습니다. 본에서 최초의 부르고뉴 와인 상인 조합인 샹피가 탄생했고 부샤르, 라뚜르, 샹송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유리병이 개발되어 와인의 숙성에 기여하였습니다. 병에 든 와인을 살 수 있는 계층에서는 영한 와인을 찾는 입맛이 구식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와인의 빈티지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1728년 런던에서 수도원장 클로드아르누가 부르고뉴 와인에 대한 최초의 책을 썼습니다. 그는 단지 포 도원을 묘사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그 포도원들의 Appellations과 «Terroir»의 이름을 달고 이미 팔리고 있는, 각 마을의 일급 와인의 최상 빈티지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시음과 관련된 각종 어휘 역시 새로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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