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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야기

[와인이야기] 부르고뉴 와인이야기, 18세기~20세기 부르고뉴와인, 부르고뉴 와인이야기 3편

by Sugarone 2025.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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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기의 부르고뉴(Bourgogne 와인)

상류 부르쥬아 계급과 귀족들 (부르고뉴 의회의 귀족)은 점차 포도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쇠퇴하고 있는 수도원을 점차적으로 계승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1760 년에 콩티 공 루이-프랑수와 드 부르봉은 보뉴의 생-비방 수도원의 «Clos»중 하나를 획득했습니다. 그것은 로마네였는데 그는 이를 아름답게 빛나도록 갈고 닦았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이 1787년에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원을 방문했을 때, 외국인 최초로 이곳에 대해 묘사하는 글을 썼습니다. 2세기가 지난 후에도, 토마스 제퍼슨이 정립한 등급 체계는 여전히 유용한 참고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덕분에 백악관의 저장고에 최초로 부르고뉴 와인병들이 저장되게 되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의 부르고뉴(Bourgogne)와인

1789 년은 프랑스 역사에 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해입니다. 성직자의 재산이 압류되었고 귀족 정당의 재산도 마찬가지로 빼앗겨 국유화 되었으며 곧이어 경매에 부쳐졌습니다. 귀족들과 성직자들의 거대한 땅이 해체되어 국유재산으로서 경매에서 팔려나갔습니다. 그 결과는 부르고뉴의 포도원을 획득하여 서로 나누어 가지게 된 계층은 바로 부르쥬아 계급이었습니다. 로마네-콩티 혹은 끌로 드 따르 등 몇개의독점 포도원만이 이분배에서 살아남아 하나의 단일한 단위로 남겨질 수 있었습니다. 다른 경우는 소규모의 구획으로 나뉘어 팔렸습니다.

예를 들어 끌로 드 부죠는 오늘날 수백개의 각기 다른 소유주에게 귀속 되어있습니다. 소유권, 특히 가장 뛰어난 포도원들에 대한 대규모의 재분배는 부르고 뉴 지방의 부르쥬아지들이나 파리의 투기꾼들에게 큰 이득이 되었습니다. 시대의 한 장이 넘어가고 새로운 장이 펼쳐진 것입니다. 로마네는, 콩 티 공이 대혁명 이후에 그 권리를 박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로마 네-콩티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유명한 이름은 언제나 제역할을 하게 마련이니까요! 1790 년에 이르면 프랑스의 행정구역이 데빠르트망(주:우리나라의 군단위 정도)으로 정비되어 부르고뉴는 네 개의 데빠르트망 즉, 욘느, 니에브르, 꼬뜨 도르와 사온느-에-루아르로 나뉘어졌습니다.

 

19 세기의 부르고뉴 와인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원은 와인 상인들(네고시앙)의 가문들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포도원의 포도를 사들이고 와인을 만들어 나무통 상태로 팔거나 혹은 와인을 나무통상태가 아닌 병입하여 판매하는 경우까지 모두 그들의 손에 이루어졌습니다. 19세기는 부르고뉴 와인이 자신의 이미지를 향상하고 정체성을 표현하는 시기였습니다. 선명한 색깔에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풍미의 레드 와인은 진정한 최고의 품질을 지닌 위대한 와인으로 불렸습니다. 부르고뉴의 극도의 섬세함을 지닌 화이트 와인은 그 얼마 후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됩니다. 부르고뉴는 황금기를 거치며 수출 시장도 매우 발전하여 러시아와 미국 까지도 진출하였습니다.

 

나폴레옹은 루이 14세와 마찬가지로 주치의의 충고를 받아들여 식사 테이블에 오로지 샹베르땡 만을 올리도록 했습니다. 쥘베른의 소설속 주인공들이 달위에 도착할때 그 순간을 축하하기위해 그들이 딴 와인은 바로한병의 뉘생조르쥬였습니다. 19세기는 또한 부르고뉴 와인의 양조학 기술과 공식적인 분류 체계의 혁신의 시대였습니다. 1855년에 의사인 라발르는 1827년과 1831년에 이 루어졌던 분류 체계 작업의 뒤를 이어 부르고뉴 와인의 등급 체계를 새로이 정립했습니다. 원산지 표기 국립 연구소(INAO)의 창설 직후이 분류법을 바탕으로 1936 년부터 아뻴라씨옹 오리진 꽁트롤레(AOC)의 정립이 이루어지게됩니다.

 

19세기 중반 경에, 마을명에 마을 안의 최상의 포도밭(Cru) 이름을 덧붙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쥬브레가 1847년 루이 필립 왕의 허가와 함께 이경우의 예시를 세웠는데 이 마을은 이때부터 쥬브레-샹베르땡이라 고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곧, 1875 년부터, 와인에 대한 이 모든 열정은 모든 것을 황폐화시 켜 버리는 질병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됩니다. 필록세라(포도나무뿌리 진디 병)가 그것입니다. 이 질병으로 포도원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그 면적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파산이 줄을 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치료법이 시도되었는데 그 중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해결법은 프랑스 전역의 모든 부르고뉴 포도 나무를 필록세라에 저항력이 강한 미국산 포도나무 뿌리에 접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포도나무를 심는 과정은 30년이 지난 후에야 끝났고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 때까지 대규모로 특별한 순서 없이 심어지고 제대로 가지치기가 이루어지지 않던 포도밭 이 이제는 포도 나무의 덩굴을 고정시켜 포도 나무를 재배하는 방법을 쓰고 줄을 맞춰 포도나무를 심게되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풍경 마저 변화 시켰으며 말과 이후에는 기계를 사용하여 밭에서 작업하는 일을 가능하 게 했습니다. 그 전에는 부르고뉴의 어느 곳에서나 포도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이제 최상의 «Terroir»에만 새로이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재배와 와인양조의 품질을 향상시켰고 그 결과 저품질의 테이블 와 인생산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필록세라로 인해 닥친 위기는 포도밭을 좀 더효율적으로 조성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20 세기의 부르고뉴 와인

1914에서18년 까지 이어진 세계 대전 끝난 후, 와인을 생산하던 여러 가문과 세습 재산은 흩어졌습니다. 와인 판매 역시 저조해졌으며 소규모 양조업자들은 포도밭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구입하였습니다. «소유주 포도원»(주:포도원에서 직접 포도재배와 양조, 숙성, 병입의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소유주 중심의 포도원 사업 형태)가 빛을 보고 오늘날의 많은 중요한 포도원들이 세워진 것은 1920-30년사이였 습니다. 1919년, Appellation의 분류법이 공식화 되었으나 1936년에 이르러 서야 실질적인 최초의 AOC가 탄생했습니다. 이 최초의 AOC는 바로 모레-생-드니로서, 이를 알리기 위한 무도회를 개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소비자에게 확고한 믿음을 돌려주므로써 위기의 시기를 극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포도 재배자들은 그룹을 짓는 경향을 보였고 1923년에 만들어진 샤블리지엔느와 같은 협동 조합 양조장을 결성했습니다. 1925 년에 부르고뉴의 포도 재배자들은 그 지역의 와인을 널리 알리는 책임을 지게 될 꽁프레리 데 슈발리에 뒤 따스뜨뱅을 조직했습니 다. 1938년 1월 22일에 첫번째 생-뱅상 뚜르낭뜨 축제가 샹볼-뮈지니 에서 개최됐습니다. 1950년에는 따스뜨비나쥬의 시작을 샤또 뒤 끌 로 드 부죠 에서 런칭했습니다. 이것은 동업조합의 프로모션 행사에 서 사용될 와인을 선택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역 전체에서 생산된 모든 등급의 와인을 시음하는 대규모의 시음행사 입니다.

 

1920-30년대에는 부르고뉴에서는 협동조합의 사업 형태로 여러해 동안의 경제 침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종종 조합을 결성하는데 특히 샬로네와 마꼬네 지역, 그리고 꼬뜨-도르의 꺄브 드오-꼬뜨, 샤블리의 샤블리지엔느 등의 협동 조합이 여전히 존 재합니다. 이 협동조합들은 포도원에서 이뤄지는 판매의 12%를 차지 합니다. (네고시앙 판매 64%, 개별 소유주 판매 24%) 1930 년대 말엽에 경제적 어려움의 결과로 직접 판매 방식이 증가했고 계속적으로 이 방식은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와인병 레이블에 포도원 이름을 표시한 와인들이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1960 년대 이르러 최초의 부르고뉴 와인의 상호교류 협회가 탄생하 였는데 이는1989년에 BIVB (부르고뉴 와인 협회)가 되었습니다. 1975년, 부르고뉴 크레망 AOC의 획득으로 부르고뉴 지역은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1995년, 디종의 쥘 기요 대학 부설 기관인 포도밭과 와인에 대한 교육원이 개설되었습니다.

 

부르고뉴 와인 재배지
부르고뉴 와인 재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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