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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야기]

[술이야기] 독일 맥주의 발전, 맥주 순수령

by Sugarone 2023.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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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맥주의 발전

복독일의 브레멘, 함부르크, 도르트문트, 쾰른, 아인베크 등의 도시는 12~15세기경에 한자 동맹에 가입하고 활발한 해외 무역을 벌였다. 이들이 빚은 고품질의 맥주는 유력한 수출품이 기도 하였다. 포도밭이 많았던 남부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주로 와인을 마셨다. 1618년에 발 발한 30년 종교 전쟁은 독일의 맥주 역사의 축을 흔들어 놓았다. 독일의 전 지역은 전쟁으로 초토화되었고 그간 번영하였던 북독일의 도시들도 모조리 파괴되었다. 남독일의 포도밭 역시 치명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포도주의 양조가 불가능해지자 남독일의 양조 산업은 북독일을 따 라 맥주로 바뀌게 된다.

그루트와 홉의 사용

그루트(왼쪽), 홉(오른쪽)

맥주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홉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홉이 맥주의 중요한 첨가물이 라는 기록은 12세기 베네딕트 수도회의 여성 수도사인 힐데가르데 폰 빙겐(Hildegardis von Bingen, 1098∼1179)의 저서 《약초의 역사, Historia reiherbriae》에 최초로 기술된다. 이 책에 는 맥주에 홉을 첨가하였다는 사실과 홉의 효능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며 음료에 첨가하면 장기 보관의 효과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홉이 맥주의 주요 첨가물로 자리 잡기 이전에는 맥주의 맛과 향을 내고 부패하는 것을 지 연시키기 위해 다양한 약초와 향료를 사용했는데 이것을 그루트(grute)라 하였다. 그루트 맥 주는 벚꽃가루, 서양톱풀, 로즈메리, 생강, 노간주나무 열매, 캐러웨이, 호두나무 열매, 향숙, 감초, 꽃, 잎, 뿌리 등 다양한 약재를 첨가하여 향이 풍부한 맥주였다. 심지어 독초를 첨가하 여 지옥의 독이라는 맥주를 만들기도 하였고 사형수의 손가락까지 맥주에 이용하였다.

이러 한 독초가 든 그루트 맥주를 마시고 집단으로 사망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자 맥주 제조에 관한 관련 법령으로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홉은 중세 맥주 양조 역사의 혁신이다. 산뜻하고 쌉쌀한 풍미의 홉은 빠른 속도로 그루트의 자리를 대신해 나갔으며 미생물에 대한 항균 효과를 가진 홉은 오늘날 맥주 양조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질 좋은 맥주에 대한 열망은 1447년 독일 남부 뮌헨에서 포고령의 반포로 이어졌다. 즉, 맥 주는 오로지 보리와 홉 그리고 물만 가지고 빚어야 하며 다른 어떠한 것도 들어가서는 안 되 며 그런 짓은 형벌로 다스린다는 포고령은 향후 맥주순수령 반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맥주 순수령

맥주순수령 원본

중세 독일의 북부 지역에 비해 남부의 맥주 품질 차이는 매우 컸다. 북독일의 아인베크의 맥주의 품질은 유럽 내에서도 평판이 자자했다. 상대적으로 품질이 낮은 맥주를 가진 남부 뮌 헨의 귀족들은 북독일의 맥주를 수입해 마시는 일이 잦았다. 수입 비용 절감을 위해 고심하 던 바이에른의 귀족들은 맥주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물을 타거나 질 나쁜 맥주를 제조하는 부패한 맥주 양조자의 부정 행위를 근절하고자 했다.

1516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Bayern) 공화국의 빌헬름 4세(Wilhelm IV)는 맥주순수령을 공 포하여 맥주는 보리, 호프, 물만을 사용하여 빚도록 하였으며, 이러한 조치는 독일 맥주산업 발전에 초석을 쌓게 된다. 1516년에 내려진 순수령에는 맥주 원료에 대해 보리, 홉 그리고 물 (Gersten, Hopfen und Wasser)이라고 적혀 있다. 이 법 덕분에 남부 독일의 맥주산업은 북쪽 의 경쟁자 못지않은 품질 향상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술의 씨앗 효모의 등장

맥주순수령이 반포될 당시에만 하여도 중세의 맥주 양조자들은 효모의 존재를 알지 못했 다. 발효통 바닥에 가라앉은 침전물이 효모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침전물이 남아 있는 상태에 맥즙을 부으면 왕성하게 발효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맥 주순수령이 반포되었을 때 효모는 맥주 첨가물에 포함되지 않았다.

1551년에 공포된 개정판 맥주순수령에는 맥주 원료가 세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난다. 보리, 홉, 물에 덧붙여 효모(Hefe)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리고 이 원문에 하면발효와 상면발효가 언 급된다. 이 시기에 이미 바이에른에서는 상면과 하면맥주를 구별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상면발효 맥주는 표면에 떠오른 효모를 건져서 밑술(starter)로 쓰고, 하면발효 맥주는 가라 앉은 효모를 모아 밑술로 사용한다. 이러한 양조 기술이 16세기 중반에 확립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맥주 순수령의 위기

종교개혁과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되어 수도원 직영 양조장은 물론 개인 양조장의 수도 현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그 후 순수령은 바이에른 이외에 지역에 전해졌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던 1919년을 계기로 독일 공화국 내의 모든 주에서 맥주순수령을 채택하게 되 어 순수령은 독일의 국법이 된다.

바이에른의 맥주순수법은 오늘날까지 그 효력을 미치게 되었는데 1987년 3월 12일, 유럽의 공동헌법재판소는 918년부터 예외 없이 적용되 고 있는 맥주순수법이 독일산 맥주에만 해당될 뿐 수입된 외국산 맥주에는 효력을 갖지 않는 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과 더불어 독일의 맥주 시장은 무장 해체의 열풍이 닥칠 것만 같은 위기의 순간이었으나 그 결과는 의외로 미미했다. 현재 독일 내 외국산 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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